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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성당은 본래 경기도 양주시 회천면 덕정리 역전에 위치해 있던 ‘덕정리 본당’을 1945년 해방 후 의정부로 옮겨와 ‘의정부 본당’으로 변경하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덕정리 본당에 부임했던 김피득(베드로, 1907~1954)신부는 덕정리로부터 남쪽으로 12km떨어진 곳에 위치한 경기도 양주시 의정부시가 교통의 중심지라서 발전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예견하고 본당 이전을 추진하였다.


 그리하여 덕정초등학교 자리에 위치해 있던 덕정리 성당을 매각하고 의정부리에 1,625평의 대지와 25평 규모의 기와 한옥1동을 매입하여 수리한 후 임시 성당과 사제관으로 사용하였다.


 이 때 신자 수는 6~7세대 30여명에 불과하였다.


‘의정부 본당’ 시대가 열린지 5년 남짓한 뒤에 벌어진 6.25 한국전쟁은 성당에 큰 상처를 남겼다.


 특히 의정부가 격전지였던 탓에 시가지가 완전히 폐허로 변했으며, 성당도 참화를 피할 길이 없었다.


온통 잿더미로 변했으나, 다행히도 창고가 반파된 채로 남아있었다.


 전란 속에서도 1950년 11월, 북진하는 국군과 함께 피난길에서 의정부에 돌아온 박지환(요한, ?~1985)신부는 제2대 신부로 발령받았지만 이듬해의 1.4후퇴로 인해 피난길에 오르게 되어 부임하지 못하는 비운을 맞았다.


 제3대 신부로 이계광(요한) 신부가 1953년 1월25일 부임하면서 전란으로 폐허가 된 성전재건이 시작되었다.


 이계광 신부는 먼저 난민 구호에 힘을 썼다. 해외 가톨릭 신자들이 보내주는 구호양곡과 의류품으로 당시 전쟁으로 헐벗고 굶주린 주민들의 구호사업을 펴는 한편, 흩어진 신자 공동체, 교회를 재결성하는 사목활동을 펴나갔다.


 한편 1953년 5월 이계광 신부는 의정부에 주둔하고 있던 미 제1군단 군종신부 로제스키 신부의 도움을 받아 68평 규모의 성전 신축을 착공 하였다.


 총공사비 7,500불을 들여 그해 8월 하순에 준공하였으며 같은 달 29일 오후 3시, 노기남 주교가 축성하였다.


 이때 성전 건축비의 2/3는 폴란드계 미국인인 로젠스키 신부가 군종으로 있던 미 1군단의 부담하였으며, 교구청이 나머지 1/3을 지원하여 그 비용으로 충당하였다.


 흔히 성당 건물은 적별돌이지만, 의정부2동성당의 경우 공사비 견적 결과 적벽돌 보다 석재가 더 저렴한 것으로 판정되어 석재를 사용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성당은 양주시 회천면 덕정리 돌산에서 채석하여 의정부 지역에서 활동하던 석공들에 의해 건축되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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