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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정부에서 동부간선도로를 따라 서울쪽으로 가다보면 7호선 종점인 장암역이 보이는데 그 맞은편 아치형에 노강서원과 석림사 안내판이 보인다.


 여기에서 석림사 계곡을 끼고 등산로를 따라 쭉 오르다 보면 윈편으로 서계(西溪) 박세당 선생의 고택이 있고 십여분을 오르다보면 노강서원을 지나서 석림사 일주문이 보인다.


 이곳에서 포장된 길을 따라 300m 정도 오르면 경내에 이르게 된다.


석림사가 자리하고 있는 곳은 수락산의 정상부에서 서쪽으로 뻗어 내린 계곡부의 하단부로 계곡의 북쪽 경사면(해발 140m)에 접하여 동서방향으로 길게 석축을 조성하여 대지를 마련하였다.


 사찰의 창건시기에 대해서는 ‘봉선사본말사약지’에는 조선시대에 박세당이 매월당 김시습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 창건하였다고 하며 또한 <경기도 불적자료집>에서는 조선 현종 12년 (1671) 석현화상(錫賢和尙)과 그의 제자 치흠(致欽)이 석림암으로 창건하였다고 한다.


 이밖에 사찰 측에 전하는 자료에는 사찰명은 서계 박세당이 지었다고 하며 1676년(병진년) 7월에 유담화상(裕談和尙)이 화주(化主)가 되어 삼소각(三笑閣)을 건립하였으며 이후 1698년(숙종 24)에 대홍수로 유실된 절을 조정(朝廷)에서 매월당 김시습을 모시는 사당으로 청절사를 세우고 축원당으로 석림암을 복원하였으며 1745년(영조21)에 석림사로 개칭하였다고 전한다.


 1950년 한국전쟁으로 모든 건물이 전소된 것을 1960년부터 비구니 상인(相仁)이 상좌(上左)보각(寶覺)과 함께 이 곳에 들렀다가 중창의 원(願)을 세우고 수년간 근고(勤苦)한 끝에 1965년 까지 극락보전 38평과 칠성각 4평, 독성각 3평, 요사 2동, 창고 등을 신축하고 법당 앞에는 오층석탑을 건립하였다.


 그 후 비구니 상인(相仁)은 1973년에 법랍(法臘)39세, 세수(世壽) 78세로 세연(世緣)을 다하고 뒤를 이어 주지가 된 비구니 보각(寶覺)은 1979년 봄부터 이듬해 10월까지 퇴락한 요사 등을 폐합하고 35평의 적묵당을 신축하였으며 전기/전화를 가설하고 협소한 진입로 1km를 노폭5m로 확장하여 포장하는 한편 계곡의 호안축대를 축성하여 도량을 확장 정리하고 미화하는 등 불사에 전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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